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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순검' 되살리고 '미생' 탄생시킨 PD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내일 | jobsN
  • 관리자
  • 작성일 : 2019.05.18 :
  • 조회 수 : 25

이재문 히든시퀀스 대표
별순검, 미생, 구해줘 시리즈 제작
“늘 새롭다, 참신하다는 소리 듣고 싶다”


드라마 제작사 ‘히든시퀀스’ 이재문(42) 대표 앞에는 몇년 전만 해도 ‘야다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야다는 1990년대 후반 등장한 록밴드 그룹이다. 데뷔곡 ‘이미 슬픈 사랑’은 지금까지 남자들의 노래방 애창곡으로 꼽힌다. 이 대표는 야다 1집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였다. 그가 활동했던 기간은 1년이지만 그에게 미친 영향은 컸다. 이 대표는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가수 출신’이라는 말이 먼저 나오니 스트레스였다”고 했다.

계원예고 연극영화과,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졸업 후 2002년 광고대행사에 입사했다. 2004년 공연기획사 쇼노트로 이직해 기획자·마케터로 일했다. 공연업계에서 20대 청춘을 바친 그는 서른이 넘어서야 드라마 PD 일을 시작했다. 비교적 늦었지만 공연업계에서 쌓은 기획력과 추진력으로 찬찬히 커리어를 쌓았다. 스튜디오드래곤 재직 시절 제작한 드라마 ‘미생’과 ‘시그널’이 연달아 대박이 나면서 그를 주로 설명하는 문구는 ‘미생·시그널 PD’로 바뀌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10년 만이었다.


최근에는 ‘구해줘 제작자’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구해줘’는 이 대표가 2016년 12월 드라마 제작사 ‘히든시퀀스’를 창업하고 처음 선보인 드라마다. 현재 OCN에서 시즌 2를 방영 중이다. 서울 한남동에 있는 히든시퀀스 사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기존과 다르다, 새롭다는 소리 듣고 싶다”


이 대표는 흔히 PD 하면 떠올리는 연출 PD는 아니다. 드라마 소재를 발굴하고 기획, 제작한다. 회사를 이끄는 대표지만 지금도 기획안을 직접 쓴다. 소재 선정, 작가 영입, 원고 작업, 투자, 스태프·배우 섭외, 광고·홍보 등 모든 과정에 관여한다.


드라마·영화·웹툰 등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콘텐츠가 쏟아져 나온다. 방송국뿐만 아니라 네이버·다음 같은 포털, 넷플릭스·유튜브 등 플랫폼도 자체 콘텐츠를 제작한다. 이런 혼란기에서 이 대표가 추구하는 차별점은 ‘다양한 세계관’이다. 아직까진 ‘드라마는 로맨스’라는 공식이 있다.

“사고와 시야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기존과 다른 것, 새롭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예술적인 평가도 받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경쟁 속에서 제가 살아남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이미 로맨스 같은 대중적인 장르는 잘하는 분들이 많아요.”


드라마 ‘구해줘’는 이전에 본 적 없는 장르로 입소문이 났다. 칼이나 망치, 귀신처럼 공포를 조장하는 장치가 없음에도 ‘무섭다’는 반응이 나왔다. 사이비 종교에 미친 사람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 미스터리함 덕분에 구해줘에 열광하는 마니아층도 생겼다. 시즌 2에서는 사이 좋던 마을 사람들이 사이비에 빠져들며 분열되고, 사기꾼들이 종교를 이용하는 모습을 그렸다. 충남 홍성에서 올로케이션 촬영을 했다.


“‘한국적인 장르’를 추구합니다. 전통을 추구한다는 뜻이 아니예요. 한국 사람이 쓰고 한국 사람이 만든 드라마이니, 한국의 정서나 사회 현상 등이 드러나길 바랍니다. 구해줘 시즌 1에서는 선악 구분이 있었다면, 시즌 2에서는 선악 구분이 모호합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절대 선과 악은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람은 다 그래’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아요. 점점 도전하는 사람들이 줄고, 약자에 대한 조롱이 아무렇지 않은 사회로 변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거룩한 가치를 강조하는 게 아니라, 드라마를 계기로 시청자들 맘 속이 한번쯤 꿈틀거리기를 바랐습니다.”


드라마 소재를 찾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뉴스나 시사 교양 프로를 챙겨 본다. 또 향후 트렌드가 어떻게 바뀔지 늘 생각한다. 드라마 PD이지만 정작 드라마를 볼 시간은 없다. “시사 이외에 챙겨보는 방송이 있다면 ‘백종원의 골목식당’입니다. 출연하는 자영업자들의 캐릭터가 그렇게 다양할 수가 없어요.” 


◇대1 때부터 알바 섭렵→공연 기획→드라마PD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중에서도 잡지 모델 급여가 쏠쏠했다. 야다 멤버가 된 계기다. 그의 잡지 사진을 본 관계자가 그를 캐스팅한 것이다. 1997년 말 밴드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막상 데뷔하니 부담감이 컸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음악성을 보여줘야 하는데, 저는 그럴만한 천재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학교로 돌아온 그는 또다시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다. 방학 때나 학기 중에 틈나는 대로 일을 했다. “주로 공연업계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습니다. 팬시·문구 디자인 회사에서도 일했어요. 여기서 파워포인트나 엑셀 다루는 법을 많이 배웠죠. 졸업 후에는 잠깐 장사도 했습니다. 친한 선배와 함께 한강 유람선 1층에서 재즈바를 운영했어요. 그때가 2002년이었는데 월드컵 특수로 인기가 좋았습니다.”


2002년 말 광고대행사에 입사했다. 주로 콘서트·뮤지컬 같은 공연 분야를 맡았다. 낮에는 광고 영업을 다니고 밤에는 기획서를 썼다. 3년을 일하다 공연기획사 쇼노트로 이직했다.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공연 시장이 열리기 시작했어요. 이전에는 해외 뮤지컬을 베껴서 만들었습니다. ‘오페라의 유령’ 정식 라이선스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대기업도 뛰어들기 시작했죠.”

뮤지컬 제작·연출가로 일하며 이례적인 시도를 했다. 2005년 뮤지컬 ‘헤드윅’ 초연 당시 주인공이 4명이었다. 조승우·송용진·김다현·오만석 등 쟁쟁한 주인공들이 한 뮤지컬에 출연한 것이다. 지금은 흔한 ‘10번 관람하면 1번 무료’를 도입한 것도 이 대표다. 앵콜 무대마다 새로운 이벤트를 열어 뮤덕(뮤지컬 덕후)을 만들었다.


늘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2006년 말 MBC플러스에 드라마 제작PD로 입사했다. “tvN, OCN 등 케이블에서 드라마를 한두 개씩 자체 제작하기 시작했어요. 새로 시도할 게 많겠다는 막연함으로 이직했습니다.”

그가 입사하자마자 맡았던 드라마가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이다. 2005년 MBC에서 방영했던 ‘추리다큐 별순검’이 원작이었다. 시청률 부진으로 조기 종영한 비운의 드라마다.

이 대표는 입사 후 처음 간 워크숍에서 기획안을 발표했다. MBC 드라마 중 외면 받았던 걸작을 리메이크하자는 내용이었다. MBC플러스는 MBC 방영 프로그램을 재방하는 채널이었다. 이 대표는 여기서 그치지 말고 드라마 덕후들에게 ‘내맘을 알아주는 채널’로 포지셔닝하자고 제안했다. 

“사실 무리한 내용이었어요. 워크숍 현장에서 ‘말도 안된다’는 소리가 나왔죠. ‘추리다큐 별순검’이 시청률이 4%가 나왔어요. 지상파에서는 25~30%는 나와야 합니다. 케이블에서 재방하면 시청률 0.8~0.9%가 꾸준히 나와요. 그런데 굳이 시청률이 부진했던 드라마를 왜 만드냐는 의견이 대세였습니다.”


그래도 밀어부쳤다. 제작PD로 입사했기 때문에 드라마를 제작하지 않으면 그에게 의미가 없었다. 근거 없이 밀어부친 건 아니다. ‘추리다큐 별순검’은 토요일 오후 4시에 방송을 해 시간대가 나빴다. 하지만 당시 별순검 팬들은 카페를 운영하며 별순검이 돌아오기를 바랐다. 또 CSI 같은 수사물이 인기였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수사물’은 독특해 관심을 끌 수 있었다.

다행히 이 대표의 발표를 눈여겨 본 임원이 ‘한번 해보라’고 했다. 제작을 하기로 한 이상 거칠 게 없다. “추진력을 얻기 위해 꾀를 냈어요. MBC 자회사 3곳 MBC플러스, MBC프로덕션, MBC미술센터가 MOU를 맺도록 했습니다. 제작비도 열악했고, 일손이 없어 직접 뛰어다녔어요.” 배우 오디션을 기획하고 홍보 포스터를 만들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고 보도자료를 썼다. 심지어 제작발표회 사회도 직접 봤다. 제작발표회에 별순검 팬카페 운영자를 초청하는 이벤트도 기획했다. 

2007년 처음 방송한 별순검은 최고 시청률 4.3%라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후 시즌 2, 시즌 3까지 제작됐다. 2008년에는 몬테카를로 TV 페스티벌에 한국 드라마 최초로 미니시리즈 부문 결선까지 진출했다.

CJ ENM 계열사 스튜디오드래곤에서 미생과 시그널 만들 때도 다르지 않았다. 철저히 기획하고 결정되면 밀어부쳤다. “미생 때 목표는 하나였습니다. 미생을 ‘대명사화’하는 거였어요. 원작 웹툰이 있음에도 작가들과 함께 프로 바둑기사 떨어진 친구들 취재를 다녔습니다.” 실제 ‘미생’은 꿈을 향해 노력하는 청년, 취업준비생을 일컫는 단어가 됐다.


◇드라마 PD 꿈꾼다면···답은 현장력

월급 받는 사람에서 이제는 월급 주는 사람이 됐다. “트렌드가 빨리 바뀌는 데다 매체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회사에 있으면 빠르게 바뀌는 흐름에 못 따라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전적으로 작업하고 싶어 창업을 결심했어요”

히든시퀀스에서는 7명의 동료들이 함께한다. 지금까지 4번째 작품을 완성했다. 8개 드라마를 동시 준비 중이다. 이 대표는 ‘히든시퀀스’ 이름이 경쟁력을 갖길 바란다. “‘히든시퀀스가 만들면 믿고본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영화 제작사 ‘워킹 타이틀’이 이런 말을 들어요. 빌리엘리엇, 노팅힐, 러브액츄얼리 등 30년 동안 같은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약자에 대한 응원’이에요. 허술하고 찌질하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주죠.”

드라마 PD는 많은 취준생이 선망하는 직업이다. 방송사마다 한 해 1~2명을 뽑고 그마저도 안 뽑고 넘어가는 해가 많다. 콘텐츠 제작사는 많지만 수익성이나 안전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제는 덕후들의 세상입니다. 단 그냥 드라마 보는 걸 좋아하는 건지, 분석력 있게 보는지를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또 기획PD를 할지, 연출PD를 할지 잘 모를 수도 있어요. 답은 하나, ‘현장력’입니다. 경험해봐야 압니다. 드라마 제작사에서 일해보세요. 톡톡 튀는 아이디어나 창의성이 중요하지 않냐는 말도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사회를 보는 눈이 있고, 사람에 관심 갖는 사람이 좋은 드라마 PD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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